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에우노미아: 질서에서 법치, 조화까지 - 좋은 통치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호라

by 룬티나 2025. 10. 29.

후대신 시리즈 #2

"법과 질서"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이죠. 하지만 이 개념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아시나요? 고대 그리스에는 "좋은 질서"를 의인화한 여신이 있었어요. 바로 에우노미아(Eunomia), 호라이 삼자매 중 맏언니였죠.

에우노미아라는 이름 자체가 의미심장해요. 'Eu(좋은)'와 'Nomos(법, 관습)'가 합쳐진 말로, "좋은 법", "좋은 질서", "좋은 통치"를 모두 의미했거든요. 단순히 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정의롭고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개념이었어요.

에우노미아는 동생 디케(정의)가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한다면, "어떻게 사회를 조직할 것인가"를 담당했어요. 막내 에이레네(평화)가 궁극적인 목표라면, 에우노미아는 그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좋은 질서가 있어야 정의가 실현되고, 정의가 있어야 평화가 온다는 논리였어요.

오늘은 고대 그리스 정치사상의 핵심 개념이었던 에우노미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도시국가들의 수호자가 됐고, 어떤 방식으로 좋은 통치를 가르쳤으며, 현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에우노미아의 이야기는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대의 답변이에요.

 

 

에우노미아: 질서에서 법치, 조화까지 - 좋은 통치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호라
에우노미아: 질서에서 법치, 조화까지 - 좋은 통치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호라

 

 

 

1. 좋은 질서의 탄생: 호라이 삼자매의 맏언니

 

테미스의 가르침을 받은 첫째 딸

에우노미아는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호라이 삼자매 중 첫째였어요. 맏언니답게 에우노미아는 어머니 테미스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테미스는 우주의 자연법칙과 신성한 질서를 관장하는 여신이었으니까, 에우노미아는 그 원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는 법을 배웠죠.

테미스는 에우노미아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질서는 억압이 아니다. 질서는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조화다." 이 가르침이 에우노미아가 평생 추구한 이상이 됐어요.

에우노미아는 동생들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특별한 임무를 받았어요. 아버지 제우스가 그녀를 불러서 말했어요. "티타노마키아 이후 세상에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네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도시들이 올바른 법과 질서를 세우도록 도와라."

에우노미아는 이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어요. 그녀는 혼란스러운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각 도시국가들을 방문하며 좋은 통치의 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에우노미아의 가르침을 받은 도시들이 번영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많은 도시들이 그녀를 찾게 됐어요.

세 자매의 완벽한 조화

호라이 삼자매는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에우노미아(질서)가 기초를 닦으면, 디케(정의)가 그 위에 공정한 판결을 세우고, 에이레네(평화)가 마지막으로 풍요와 안정을 가져왔어요.

이 순서가 중요했어요. 에우노미아 없이 디케가 작동할 수 없었고, 디케 없이 에이레네가 올 수 없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정치의 기본 원리로 여겼어요. 먼저 좋은 법을 만들고(에우노미아), 그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디케),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에이레네)는 거였죠.

세 자매는 올림포스의 문지기 역할도 함께 했어요. 신들이 하늘과 땅을 오갈 때 구름으로 만든 거대한 문을 열고 닫는 일이었죠. 이는 상징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관장한다는 의미였어요.

특히 에우노미아는 인간 세상에서 올림포스로 올라오는 기도와 제물을 검토하는 역할을 했어요. 정의롭지 못한 통치자의 기도는 에우노미아가 막았고, 좋은 법을 세운 도시의 기도는 특별히 아버지 제우스에게 전달했어요.

에우노미아는 또한 계절의 변화도 관장했어요. 특히 봄, 씨를 뿌리는 계절과 관련이 깊었어요. 좋은 질서가 있는 땅에는 씨앗이 잘 자라고, 혼란스러운 땅에는 흉년이 든다고 믿었거든요. 농부들은 씨를 뿌리기 전에 에우노미아에게 기도하며 "우리 도시에 좋은 질서를 주소서"라고 빌었어요.

노모스: 법과 관습의 조화

에우노미아의 이름에 들어있는 '노모스(Nomos)'는 단순히 '법'만을 의미하지 않았어요. 성문법, 관습법, 사회적 규범, 도덕적 원칙...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었어요. 에우노미아가 가르친 것도 바로 이런 포괄적인 질서였죠.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모스와 퓌시스(Physis, 자연)를 대비시켰어요. 퓌시스는 자연의 법칙으로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이었고, 노모스는 인간이 만든 법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에우노미아가 강조한 것은 노모스가 퓌시스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어요. 인간이 만든 법도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거죠. 자연을 거스르는 법은 아무리 힘으로 강제해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가르쳤어요.

또한 에우노미아는 법이 단순히 처벌의 수단이 아니라 교육의 도구여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좋은 법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든다는 거예요. 공포가 아니라 설득과 합의를 통해 작동하는 법이 진정한 노모스라고 가르쳤죠.

에우노미아의 상징들

에우노미아는 여러 가지 상징물과 함께 묘사됐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입법 석판, 올리브 가지, 그리고 풍요의 뿔이었어요.

입법 석판은 성문법을 상징했어요. 에우노미아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관습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거든요. 법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야 누구나 알 수 있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올리브 가지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했어요. 좋은 질서가 있는 곳에는 평화가 오고, 평화가 있는 곳에는 올리브나무가 자란다는 의미였죠. 실제로 올리브 재배는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이 있어야만 가능했어요. 올리브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으니까요.

풍요의 뿔(cornucopia)은 좋은 통치가 가져오는 물질적 풍요를 상징했어요. 에우노미아가 있는 도시는 경제적으로도 번영한다는 믿음을 나타냈어요. 실제로 법과 질서가 잘 확립된 도시들이 무역과 상업에서 유리했거든요.

때로는 에우노미아가 왕홀이나 월계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졌어요. 왕홀은 정당한 권위를, 월계관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했어요. 좋은 질서를 세운 통치자는 신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영광을 얻는다는 의미였죠.

디스노미아: 에우노미아의 그림자

에우노미아를 이해하려면 그녀의 반대 개념인 디스노미아(Dysnomia)도 알아야 해요. 디스노미아는 "나쁜 법", "무질서", "혼란"을 의미하는 존재로, 에리스(불화의 여신)의 딸이었어요.

디스노미아는 에우노미아가 세운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항상 노력했어요. 좋은 법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권력자들이 법을 악용하도록 부추겼어요. 에우노미아와 디스노미아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 전쟁이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도시에 이 두 힘이 작용한다고 믿었어요. 에우노미아가 강한 도시는 번영하고, 디스노미아가 강한 도시는 몰락한다는 거죠.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디스노미아가 승리한 결과라고 여겼어요.

헤시오도스는 디스노미아를 "악한 통치의 딸"이라고 불렀어요. 통치자가 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 디스노미아가 그 도시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거였죠. 반대로 에우노미아를 존중하는 도시는 신들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어요.

 

 

2. 좋은 통치의 실천: 스파르타에서 아테네까지

 

리쿠르고스의 개혁: 스파르타의 에우노미아

에우노미아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곳은 스파르타였어요. 전설적인 입법자 리쿠르고스(Lycurgus)는 에우노미아의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스파르타의 헌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져요.

리쿠르고스는 델포이 신탁소를 방문했을 때 에우노미아에 대한 계시를 받았어요. 신탁은 그에게 말했죠. "네가 찾는 것은 에우노미아다. 좋은 질서가 스파르타를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리쿠르고스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개혁에 착수했어요.

리쿠르고스의 개혁은 포괄적이었어요.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하고, 사치를 금지하고, 공동 식사를 의무화하고, 교육 제도를 정비했어요. 모든 것이 "좋은 질서"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어요.

특히 스파르타의 정치 제도는 에우노미아의 원칙을 완벽하게 반영했어요. 두 명의 왕, 28명의 원로, 그리고 시민 총회... 이 세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었거든요. 어느 한쪽도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설계된 거예요.

스파르타인들은 에우노미아를 도시의 수호신처럼 여겼어요. 전쟁에 나갈 때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항상 에우노미아에게 기도했어요. "우리가 조상들이 세운 좋은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말이에요.

흥미롭게도 스파르타에는 성문법이 거의 없었어요. 리쿠르고스는 법을 글로 쓰는 것을 거부했거든요. 대신 구전으로 전해지는 관습과 교육을 통한 내면화를 중시했어요. 이것도 에우노미아의 가르침이었어요. "법은 돌판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솔론의 개혁: 아테네의 에우노미아

아테네에서는 솔론(Solon)이 에우노미아의 원칙을 실현했어요. 기원전 594년, 아테네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빠져있었어요. 빈부격차가 극심했고, 많은 시민들이 빚 때문에 노예가 되고 있었거든요.

솔론은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개혁을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의 시에서 에우노미아를 여러 번 언급하며 이렇게 노래했어요. "에우노미아는 모든 것을 질서 있고 완벽하게 만든다. 그녀는 부정한 자들을 족쇄로 묶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하고, 교만을 멈추게 하고, 불화의 꽃을 시들게 한다."

솔론의 개혁은 다방면에 걸쳐있었어요. 먼저 채무를 탕감하고 시민들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켰어요. 그리고 재산에 따라 시민을 네 계급으로 나누되, 모든 시민에게 민회 참여권을 주었어요. 이는 귀족과 평민 사이의 타협이었어요.

솔론은 또한 법전을 편찬했어요. 드라코의 가혹한 법을 대부분 폐지하고, 더 온건하고 공정한 법으로 대체했어요. 법을 나무판에 새겨서 아고라에 전시했는데, 누구나 읽고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솔론이 권력을 포기한 것이었어요. 개혁을 완료한 후 그는 참주(독재자)가 될 수 있었지만, 대신 10년간 여행을 떠났어요. 이것이야말로 에우노미아의 진정한 실천이었어요. 개인의 권력보다 법과 질서를 우선시한 거니까요.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주의: 에우노미아의 완성

솔론의 개혁 후 약 100년이 지나서,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완성했어요. 그의 개혁도 에우노미아의 원칙에 기반했어요.

클레이스테네스는 부족 제도를 개편했어요. 기존의 혈연 중심 부족을 해체하고, 지역 기반의 새로운 10개 부족을 만들었어요. 이는 귀족 가문의 영향력을 줄이고 시민의 평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어요.

그는 또한 오스트라키스모스(도편추방제)를 도입했어요. 매년 민회에서 투표를 통해 참주가 될 위험이 있는 인물을 10년간 추방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이는 권력의 집중을 막고 에우노미아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였어요.

클레이스테네스의 가장 큰 업적은 이소노미아(Isonomia) 개념을 확립한 것이에요. 이소노미아는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해요.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원칙이었죠. 이것이 바로 에우노미아가 추구했던 이상이었어요.

아테네인들은 클레이스테네스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 자신은 자신이 만든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에우노미아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좋은 질서, 좋은 법, 좋은 통치... 그것이 그가 추구한 것이었으니까요.

법정 연설과 에우노미아

고대 아테네의 법정 연설문들을 보면 에우노미아가 자주 등장해요. 변호사들은 자신의 의뢰인이 에우노미아를 지켰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이 디스노미아를 일으켰다고 비난했어요.

데모스테네스 같은 유명한 연설가들은 에우노미아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어요. "에우노미아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고, 디스노미아를 허용하는 것이 배신이다"라고 주장했죠. 정치적 논쟁이 결국 "무엇이 좋은 질서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던 거예요.

특히 반역죄나 국사범 재판에서 에우노미아가 핵심 쟁점이 됐어요. 피고인이 도시의 질서를 위협했는가, 아니면 오히려 부패한 질서를 바로잡으려 했는가... 이런 질문들이 판결을 좌우했어요.

흥미로운 것은 소크라테스 재판에서도 양측이 모두 에우노미아를 내세웠다는 점이에요. 검찰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켜 도시의 질서를 해쳤다고 주장했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에우노미아를 추구했다고 항변했어요.

식민 도시의 건설과 에우노미아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곳곳에 식민 도시를 세울 때도 에우노미아가 중요했어요. 새 도시를 건설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법과 제도를 정하는 것이었거든요.

식민 도시의 창건자(oikistes)는 델포이 신탁소를 방문해서 에우노미아의 축복을 구했어요. 신탁은 새 도시의 헌법에 대한 조언을 주었고, 창건자는 그 조언에 따라 법을 제정했어요.

가장 유명한 사례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예요. 이 도시의 창건자들은 에우노미아의 신전을 도시 중심에 세우고, 매년 에우노미아 축제를 열었어요. 시민들은 이 축제에서 도시의 법을 낭독하고 준수를 맹세했어요.

식민 도시들은 본국보다 더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설계됐어요. 격자형 도로, 명확한 구역 분할, 공공 건물의 배치... 모든 것이 에우노미아의 원칙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었어요. 도시 자체가 질서의 상징이 된 거죠.

 

 

3. 현대의 에우노미아: 법치주의와 좋은 거버넌스

 

법치주의의 기원

에우노미아는 현대 법치주의(Rule of Law)의 직접적인 조상이에요. 법치주의의 핵심 원칙들 - 법의 지배, 법 앞의 평등, 권력 분립, 적법 절차 - 은 모두 에우노미아에서 나왔어요.

"법이 통치한다, 사람이 아니라"는 유명한 법언이 바로 에우노미아의 정신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이렇게 썼어요. "법의 지배가 인간의 지배보다 낫다. 왜냐하면 법은 이성이고, 인간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중세를 거치면서 에우노미아의 전통은 약해졌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부활했어요.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재발견되면서 에우노미아 개념도 함께 부활한 거죠.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로크 같은 사상가들이 에우노미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어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이론은 에우노미아의 현대판이에요. 입법, 행정, 사법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 이것은 스파르타의 혼합정체나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거예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에우노미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요. 제퍼슨, 메디슨, 해밀턴은 모두 고전 교육을 받았고, 그리스의 정치 사상을 깊이 연구했어요.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에우노미아 원칙의 직접적인 적용이에요.

헌정주의와 제한된 정부

에우노미아가 강조한 것 중 하나가 권력의 제한이에요. 아무리 현명한 통치자라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현대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의 핵심이에요.

헌법은 권력자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최고법이에요. 이는 에우노미아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고대 그리스의 믿음과 같아요. 통치자도 법 아래에 있고,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원칙이죠.

독일의 법치국가(Rechtsstaat), 프랑스의 법의 지배(État de droit), 영미의 법치주의(Rule of Law)... 이 모든 개념이 에우노미아의 후손이에요. 표현은 다르지만 핵심은 같아요. 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독일 헌법재판소는 에우노미아의 현대적 수호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의회가 만든 법도 헌법에 위배되면 무효화할 수 있거든요. 다수의 의견이라도 기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바로 에우노미아의 정신이에요.

인권의 불가침성도 에우노미아와 연결돼요. 에우노미아가 "좋은 법"을 강조한 것처럼, 현대 헌정주의는 "정의로운 법"을 요구해요. 단순히 절차적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정의로워야 한다는 거죠.

굿 거버넌스: 21세기의 에우노미아

현대 국제기구들이 강조하는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는 에우노미아의 21세기 버전이에요. 세계은행, UN, OECD 같은 기구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굿 거버넌스를 요구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에우노미아의 원칙들이에요.

굿 거버넌스의 핵심 요소들을 보면: 법치, 투명성, 책임성, 참여, 효율성, 형평성... 이 모든 것이 에우노미아가 가르친 "좋은 통치"의 원칙이에요.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했던 것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거죠.

특히 부패 척결이 굿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인데, 이것도 에우노미아의 관심사였어요. 고대 그리스에서도 공직자의 부패는 에우노미아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졌거든요. 공정한 법 집행과 투명한 행정이 좋은 질서의 기초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부패인식지수나 세계은행의 거버넌스 지표... 이런 측정 도구들은 현대판 에우노미아 평가표라고 할 수 있어요. 각 나라가 얼마나 에우노미아를 실현하고 있는지 수치로 보여주는 거죠.

기업 지배구조와 에우노미아

에우노미아의 원칙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적용돼요. 현대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회사 안에서 에우노미아를 실현하려는 노력이에요.

이사회, 경영진, 주주, 이해관계자... 이들 사이의 권력 균형과 견제가 바로 에우노미아의 원칙이에요. 한쪽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법과 윤리를 준수하도록... 이 모든 것이 좋은 질서를 만들기 위한 장치예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서 G(거버넌스)가 주목받는 것도 에우노미아의 부활이에요.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좋은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거든요.

엔론, 월드컴, 리먼 브라더스... 이런 대기업들이 무너진 이유가 바로 에우노미아의 부재였어요. 내부 통제가 실패하고, 권력이 남용되고, 법과 윤리가 무시됐던 거죠. 반대로 장수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 강력한 거버넌스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의 질서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에우노미아가 필요해요. 온라인 공간, 플랫폼 경제, 인공지능... 이런 새로운 영역에도 "좋은 질서"가 필요하거든요.

플랫폼 거버넌스가 좋은 예예요.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같은 플랫폼들이 어떤 규칙을 만들고 어떻게 집행하는가가 중요한 이슈가 됐어요. 표현의 자유와 유해 콘텐츠 규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에우노미아 문제예요.

블록체인과 DAO(탈중앙화 자율조직)도 에우노미아의 새로운 실험이에요. 중앙화된 권력 없이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 스마트 계약으로 법을 자동 집행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에우노미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예요.

AI 거버넌스도 중요한 과제예요.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에 사용될 때 어떤 원칙과 규칙을 따라야 하는가? 알고리즘의 공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것도 에우노미아의 현대적 과제예요.

국제 질서와 에우노미아

국제 사회도 에우노미아를 필요로 해요. 무정부 상태인 국제 관계에서 어떻게 질서를 만들 것인가가 오래된 과제거든요.

UN, WTO, ICC(국제형사재판소) 같은 국제기구들은 국제적 에우노미아를 만들려는 시도예요. 힘이 아니라 법과 규칙에 따라 국제 관계를 운영하자는 거죠. 물론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규범으로서는 확립됐어요.

국제법도 점점 발전하고 있어요. 전쟁법, 인권법, 무역법, 환경법... 국제 사회의 "좋은 질서"를 만들기 위한 법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요. 에우노미아의 영역이 국경을 넘어 확장되고 있는 거예요.

기후 변화 대응도 국제적 에우노미아가 필요한 영역이에요. 모든 나라가 함께 규칙을 만들고 지켜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든요. 파리 협정 같은 국제 조약이 바로 지구적 차원의 에우노미아를 만들려는 노력이에요.

마치며

에우노미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좋은 질서"라는 개념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거예요. 단순히 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정의롭고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게 에우노미아의 핵심이었어요.

현대 사회는 에우노미아를 절실히 필요로 해요. 법은 있지만 정의롭지 못한 사회, 질서는 있지만 억압적인 사회, 규칙은 많지만 공정하지 못한 사회... 이런 곳들이 너무 많아요. 디스노미아가 여전히 강한 거죠.

하지만 희망도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좋은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권력의 투명성, 법의 공정성, 시민의 참여... 이런 가치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에우노미아의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는 거예요.

다음에 뉴스에서 부패 사건이나 부당한 권력 행사를 보게 되면 에우노미아를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에우노미아가 있는가? 좋은 법, 좋은 질서, 좋은 통치가 실현되고 있는가?

에우노미아는 저절로 오지 않아요. 시민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감시하고, 참여해야 유지될 수 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이 에우노미아를 여신으로 모신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지키기 어려운 가치인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에우노미아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 해요. 부당한 법에 저항하고, 공정한 규칙을 요구하고, 투명한 권력을 감시하는... 그것이 현대의 에우노미아 신앙이에요. 호라이 삼자매의 맏언니가 가르쳐준 지혜를 우리 시대에 실천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