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고대 신 시리즈 #5
"이건 운명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아니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라고 생각해본 적은요?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일들은 선택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상징하는 여신이 있어요. 바로 아낭케(Ananke)예요.
아낭케는 우리에게 익숙한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보다도 더 근본적인 존재예요. 모이라이가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면, 아낭케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절대 법칙 그 자체예요. 중력이 사과를 땅으로 떨어뜨리듯,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듯, 생명이 반드시 죽음으로 향하듯... 이런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이 바로 아낭케거든요.
흥미로운 건 아낭케가 "강제"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영어의 'necessity(필연성)'가 바로 아낭케에서 나온 말이에요. 고대 철학자들은 이 여신을 통해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졌어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지가 있는 걸까? 아니면 모든 게 이미 정해진 걸까?" 오늘은 이 심오한 주제를 아낭케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1. 우주의 중심축: 필연성의 여신이 돌리는 세계의 물레
카오스와 크로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절대 법칙
아낭케의 탄생 이야기는 신화마다 조금씩 달라요. 어떤 전승에서는 닉스(밤)와 에레보스(어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카오스에서 직접 태어났다고 해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아낭케가 우주가 형성되는 초기에 나타났고, 우주의 근본 원리를 이룬다는 거예요.
오르페우스교의 우주론에서는 아낭케를 정말 특별하게 다뤄요. 그들에 따르면 아낭케는 크로노스(시간의 신)와 영원히 뒤엉켜 있는 존재예요. 시간과 필연성이 서로 분리할 수 없게 얽혀있다는 뜻이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뱀처럼 생긴 크로노스가 우주를 감싸고 있고, 아낭케가 그 뱀과 함께 나선형으로 꼬여있는 모습을요. 시간이 흐르면(크로노스) 필연적으로(아낭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씨앗은 반드시 자라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늙고, 시작된 것은 반드시 끝나죠.
플라톤은 『국가』에서 아낭케를 "우주의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모이라이(운명의 세 여신)가 아낭케의 딸들이라고 명시했거든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아시나요? 제우스조차 거역할 수 없다는 모이라이의 어머니가 바로 아낭케라는 거예요!
우주의 물레를 돌리는 여신
플라톤의 『국가』에는 아낭케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묘사가 나와요. "에르의 신화"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정말 장대하고 아름다워요.
플라톤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거대한 물레가 있어요. 이 물레의 회전축은 아낭케의 무릎을 관통하고 있고, 그녀가 앉아서 이 물레를 돌린다고 해요. 이 물레가 바로 우주 전체의 회전을 일으키는 거예요. 천체들이 돌고, 계절이 바뀌고, 낮과 밤이 교대하는 모든 것이 이 물레 때문이에요.
물레에는 여덟 개의 바퀴가 끼워져 있는데, 각각이 다른 천체를 나타내요. 가장 바깥쪽이 항성들의 하늘이고, 안쪽으로 갈수록 토성, 목성, 화성, 수성, 금성, 태양, 달의 궤도예요. 현대 천문학과는 다르지만, 고대인들이 관찰한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거죠.
그리고 이 각각의 바퀴 위에는 세이렌(Siren)이 한 명씩 앉아있어요. 여덟 명의 세이렌이 각각 다른 음높이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 여덟 소리가 합쳐져서 완벽한 화음을 이뤄요. 이게 바로 "천체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이에요. 우주는 침묵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거예요.
물레 주위에는 아낭케의 세 딸, 모이라이가 앉아있어요.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죠. 이들은 어머니의 물레가 돌아가는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불러요. 클로토는 "현재를 노래하고", 라케시스는 "과거를 노래하고", 아트로포스는 "미래를 노래한다"고 해요.
모이라이의 어머니, 운명을 낳은 필연
아낭케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모이라이와의 관계를 봐야 해요. 모이라이는 우리에게 익숙하죠. 클로토가 생명의 실을 뽑고, 라케시스가 그 길이를 정하고, 아트로포스가 자르는 거요. 이들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와요. "모이라이는 어떻게 각 사람의 운명을 정하는 걸까? 그들도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는 걸까?" 답은 "그렇다"예요. 모이라이가 따르는 절대 법칙, 그게 바로 어머니 아낭케예요.
예를 들어볼게요. 모이라이가 어떤 사람의 수명을 정할 때, 그들은 완전히 자유롭게 정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필연성을 따라야 해요. 아무리 모이라이라도 인간을 불멸로 만들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죽는다"는 게 아낭케가 정한 우주의 법칙이니까요.
또 다른 예를 들면, 계절의 순환도 아낭케의 법칙이에요. 모이라이가 특정 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정할 수는 있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를 바꿀 수는 없어요. 이건 아낭케가 정한 필연이니까요.
헤시오도스의 다른 전승에서는 아낭케가 닉스의 딸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모이라이는 아낭케의 딸이자 닉스의 손녀가 되는 거죠. 어둠(닉스) → 필연성(아낭케) → 운명(모이라이)로 이어지는 계보는 정말 의미심장해요. 어둠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법칙이 나오고, 그 법칙에 따라 각자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거니까요.
제우스도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
닉스 이야기에서 제우스가 밤의 여신을 두려워했다고 했죠? 아낭케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는 표현도 부족해요. 제우스는 아낭케를 인정해요.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제우스가 사랑하는 아들 사르페돈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게 돼요. 제우스는 아들을 구하고 싶어 해요. 신들의 왕이니까 그럴 힘이 있잖아요?
하지만 헤라가 말려요. "당신이 사르페돈을 구한다면, 다른 신들도 자기 자식들을 구하려 할 거예요. 그러면 운명의 질서가 무너져요." 제우스는 결국 포기해요. 왜냐하면 "인간은 죽는다"는 필연성, 즉 아낭케의 법칙을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이게 그리스 비극의 핵심이에요. 아무리 강력한 신이라도, 아무리 지혜로운 영웅이라도 아낭케는 피할 수 없어요. 오이디푸스가 아무리 도망쳐도 예언은 이루어지고, 아킬레우스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 죽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2. 필연성의 본질: 자유와 운명 사이의 철학적 딜레마
고대 철학자들이 고민한 아낭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낭케에 열광했어요. 이 여신이 제기하는 문제가 너무 흥미로웠거든요. "모든 게 필연이라면 우리의 선택은 무의미한 걸까?"
플라톤은 아낭케를 우주의 합리성과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로 봤어요. 『티마이오스』에서 그는 우주가 두 가지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하나는 누스(Nous, 이성/정신)이고, 다른 하나가 아낭케(필연성)예요.
누스는 우주를 아름답고 질서있게 만들려는 창조적 지성이에요. 반면 아낭케는 "물질의 법칙", 즉 물질이 따를 수밖에 없는 근본 성질이에요. 예를 들어 돌은 아래로 떨어지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것처럼요.
플라톤에게 우주는 누스와 아낭케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누스가 "이렇게 하면 아름답겠다"고 계획하면, 아낭케의 법칙 안에서 가능한 한 그 계획을 실현하는 거죠.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거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좀 다르게 봤어요. 그는 아낭케를 "조건적 필연성"과 "절대적 필연성"으로 나눴어요. 절대적 필연성은 수학 같은 거예요. 2+2=4라는 건 언제 어디서나 필연적이죠. 하지만 조건적 필연성은 "만약 A를 원한다면, B를 해야 한다"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집을 짓고 싶다면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조건적 필연성이에요. 집을 짓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일상적 필연성이 이런 조건적인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여전히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했죠.
스토아 철학자들은 아낭케를 완전히 받아들였어요. 그들에게 아낭케는 "우주의 로고스(이성)"와 같은 거였어요. 모든 일은 완벽한 이성에 따라 일어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죠.
에픽테토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어떤 것은 우리 힘 안에 있고, 어떤 것은 우리 힘 밖에 있다." 날씨, 다른 사람의 행동, 과거 등은 아낭케의 영역이에요. 우리가 바꿀 수 없죠. 하지만 우리의 태도, 판단, 의지는 우리 힘 안에 있어요. 진정한 자유는 필연성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라고 했어요.
운명론 vs 자유의지: 끝없는 논쟁
아낭케가 제기하는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거예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지가 있는 걸까?"
운명론자들은 말해요.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낭케의 물레가 돌아가는 방향대로 모든 게 일어난다. 우리가 선택한다고 느끼는 건 착각일 뿐이다."
이 입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문제가 생겨요. 만약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 도덕적 책임도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나쁜 짓을 한 건 정해진 운명이었어"라고 변명할 수 있죠.
반대로 자유의지론자들은 말해요. "인간에게는 진정한 선택 능력이 있다. 우리의 결정이 미래를 만든다. 아낭케는 큰 틀의 법칙일 뿐, 개인의 선택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어요. 만약 우리의 선택이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주의 질서와 법칙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요? 모두가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혼돈이 오지 않을까요?
그리스 신화는 재미있게도 중간 입장을 제시해요.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아낭케),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자유의지)는 거예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봐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아낭케)은 피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의 선택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추방을 자처했죠. 운명은 피할 수 없었지만,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었던 거예요.
현대 과학이 발견한 아낭케
놀랍게도 현대 과학은 아낭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어요. 물론 실제 여신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라는 이름으로요.
물리학의 자연 법칙들을 보세요. 중력의 법칙, 열역학 법칙, 상대성 이론... 이것들은 예외가 없어요. 어디서나, 언제나 작동하죠. 사과는 항상 아래로 떨어지고,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에너지는 보존돼요. 이게 바로 아낭케예요!
특히 열역학 제2법칙은 아낭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에요.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는 법칙이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법칙 때문에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모든 것이 결국 쇠퇴하고, 우주가 언젠가는 열죽음을 맞이하게 되거든요. 완전히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이죠.
양자역학은 더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해요. 미시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가 있어요. 이건 우리가 측정 도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근본 법칙이라는 거예요.
어떤 과학자들은 이게 자유의지의 여지를 준다고 봐요.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반대로 불확정성 자체가 아낭케의 한 형태라고 봐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니까요.
현대 신경과학도 논쟁에 참여해요. 우리 뇌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한 결과, 우리가 "선택했다"고 의식하기 전에 이미 뇌가 결정을 내렸다는 실험 결과가 있어요. 이게 사실이라면 자유의지는 착각일까요? 아니면 무의식적 선택도 여전히 "우리의" 선택일까요?
3. 필연성과 함께 살아가기: 받아들임의 지혜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스토아 철학자들은 아낭케와 함께 사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제시했어요.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체념하는 게 아니에요. 니체가 나중에 다시 강조한 이 개념은 일어난 모든 일을,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까지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이게 달라졌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이것이 일어난 게 완벽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어요.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주의 로고스에 따라 일어난다.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다." 그는 로마 황제였는데도 전염병, 반란, 가족의 배신 같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어요.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아낭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했어요.
이런 태도가 주는 힘은 엄청나요. 바꿀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니까요.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태도와 반응에 집중할 수 있어요.
세렌디피티: 필연 속에서 발견하는 행운
반대로 아낭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현대적 개념도 있어요. 바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예요. 우연히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죠.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계획하지 않은 채 일어나요. 우연히 만난 사람과 평생의 친구가 되고, 계획에 없던 여행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실패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나중에 가장 큰 자산이 되기도 하죠.
이것들이 정말 우연일까요? 아니면 아낭케가 우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한 걸까요? 답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능력이에요.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connecting the dots(점들을 연결하기)"에 대해 말했어요.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 오직 과거를 돌아보며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점들이 언젠가는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게 바로 아낭케와 함께 사는 현대적 방식이에요.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더 큰 필연성의 일부라고 믿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거죠.
현대인을 위한 아낭케의 교훈
우리가 사는 현대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가득해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날씨도 예측하고, 질병도 치료하고, 심지어 유전자도 편집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낭케의 영역 안에 있어요.
COVID-19 팬데믹이 그걸 보여줬어요. 아무리 발달한 현대 문명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력했어요. 우리의 계획, 여행, 결혼식, 졸업식... 모든 게 멈췄죠. 이건 아낭케의 법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선택할 수 있었어요. 팬데믹이라는 필연성은 피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절망했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했죠.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예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는 것, 빙하가 녹는 것,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 이것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아낭케예요. 우리가 "이건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라고 바라도 소용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어요. 더 빨리 진행되게 할지 느리게 할지, 피해를 최소화할지 방치할지, 함께 협력할지 따로따로 행동할지... 필연성 안에서의 선택이에요.
받아들임과 행동의 균형
아낭케의 교훈은 결국 균형이에요. 받아들여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구분하는 지혜죠.
기독교의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가 이를 잘 표현해요.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
이게 바로 아낭케와 자유의지의 조화예요. 우리는 죽는다는 필연성은 받아들이되, 어떻게 살지는 선택해요.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필연성은 받아들이되, 미래는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요.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없다는 필연성은 받아들이되, 우리 자신은 바꿀 수 있어요.
현대 심리학의 수용 전념 치료(ACT)도 비슷한 원리예요. 불안이나 고통 같은 부정적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그건 불가능한 필연성이에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가치 있는 행동을 하라는 거죠.
마치며
아낭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무겁고 절망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모든 게 정해져 있다니, 그럼 내 노력은 무의미한 거야?"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이건 오히려 자유롭게 하는 지혜예요.
바꿀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요. 과거, 다른 사람의 생각, 우주의 법칙... 이런 것들은 아낭케의 영역이에요. 우리 힘 밖이죠. 그걸 받아들이면 엄청난 평화가 찾아와요.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의 태도, 다음 행동, 가치관, 노력... 이것들은 우리 손 안에 있어요. 필연성 안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죠.
아낭케의 물레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요. 우주의 법칙은 변하지 않고,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태어난 것은 결국 죽어요. 하지만 그 물레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우리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어떤 색실을 짜 넣을지는 우리의 선택이에요.
다음 편에서는 우주의 또 다른 근본 원리, 가이아(대지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모든 생명을 낳고 품는 위대한 어머니이자, 동시에 자식들에게 복수하는 무서운 여신의 양면을 탐험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