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꽃과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3
9월 꽃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맨드라미예요. 붉은 벨벳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불꽃처럼 강렬한 이 꽃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한 영웅의 모습이 떠올라요. 황금빛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전장을 누비던 아킬레우스(Achilles)의 모습 말이에요.
맨드라미의 영어 이름은 '콕스콤(Cockscomb)', 즉 '수탉의 벼슬'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그리스어로는 '케로시아(Celosia)'라고 하는데, 이는 '타오르는, 불타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정말 아킬레우스의 성격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이죠.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전사였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인물이기도 했어요. 불굴의 용기와 치명적인 약점, 깊은 우정과 폭발적인 분노, 영광에 대한 갈망과 운명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극단적이고 강렬했거든요. 마치 맨드라미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도전적인 것처럼 말이에요.
오늘은 9월의 맨드라미와 함께 아킬레우스의 장대한 서사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시작된 불사신화, 파트로클로스와의 운명적 우정, 그리고 헥토르와의 숙명적 대결까지... 한 송이 맨드라미에 담긴 영웅의 모든 것을 풀어보겠어요.
1. 맨드라미의 비밀: 수탉의 벼슬처럼 당당하고 불꽃처럼 뜨거운 꽃
전사의 투구를 닮은 독특한 꽃 모양
맨드라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게 정말 꽃이야?"라고 의아해해요. 일반적인 꽃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거든요. 꽃잎도 없고, 대신 벨벳 같은 질감의 꽃이삭이 마치 닭의 벼슬이나 전사의 투구 깃털처럼 솟아있어요.
맨드라미의 꽃은 정확히는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서 만든 꽃차례(花序)예요. 하나의 꽃이삭에 수백 개의 미세한 꽃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거죠. 이 구조가 정말 놀라워요. 개별적으로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함께 모이면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거거든요. 마치 아킬레우스가 이끌던 미르미돈족 전사들이 개별적으로는 평범했지만, 아킬레우스와 함께할 때는 무적의 군단이 된 것처럼 말이에요.
색깔도 다양해요. 가장 흔한 건 붉은색이지만,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심지어 자주색까지 있어요. 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적인 건 불꽃 같은 붉은색이에요. 이 색깔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첫 구절이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라"로 시작하는 것처럼, 맨드라미의 붉은색도 그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 같거든요.
꽃말에 담긴 전사의 정신
맨드라미의 꽃말이 정말 의미심장해요. '불멸의 사랑', '변치 않는 마음', '색바래지 않는 사랑' 같은 의미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아킬레우스의 캐릭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요.
특히 '불멸의 사랑'이라는 꽃말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떠올리게 해요. 죽음으로도 끊어질 수 없는 깊은 유대감 말이에요. 또한 '변치 않는 마음'은 아킬레우스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확고한 신념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열정'과 '용기'라는 꽃말도 있어요. 이는 아킬레우스의 전투에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요. 그는 전장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싸웠고, 어떤 적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거든요.
9월에 피는 이유와 생존 전략
맨드라미가 9월에 절정을 이루는 이유는 흥미로워요. 원래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맨드라미는 더운 기후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여름이 끝날 무렵인 9월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요.
이는 맨드라미의 영리한 생존 전략이에요. 한여름의 무더위에는 다른 꽃들과 경쟁하고, 가을이 되어서는 서리 내리기 전까지 최대한 화려하게 피어서 곤충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거든요. 마치 아킬레우스가 짧은 생을 예감하면서도 더욱 치열하게 명예를 추구한 것과 비슷해요.
맨드라미는 1년생 초본이에요. 한 해 동안만 살다가 씨앗을 남기고 죽는 거죠. 하지만 그 짧은 생애 동안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겨요. 아킬레우스도 비슷했어요. 길고 평범한 삶 대신 짧지만 영광스러운 삶을 선택했거든요.
건조해도 색이 바래지 않는 특성
맨드라미의 가장 놀라운 특성 중 하나는 건조해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른 꽃들은 시들면 색깔이 변하거나 흉해지는데, 맨드라미는 말려도 원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해요.
이 특성 때문에 맨드라미는 예로부터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어요. 죽음 이후에도 아름다움이 계속되는 거잖아요. 아킬레우스의 명성과 똑같아요. 그는 트로이에서 죽었지만, 그의 이름과 업적은 영원히 기억되고 있거든요.
또한 맨드라미는 드라이플라워로 인기가 높아요. 생화로도 아름답지만, 말린 후에도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존용으로 사용해요. 이는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구전과 문학을 통해 수천 년간 보존되어 온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2. 아킬레우스의 탄생: 불사의 몸과 치명적 약점의 운명
테티스의 예언과 어머니의 사랑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돼요. 그의 어머니 테티스(Thetis)는 바다의 님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어요. 제우스와 포세이돈 모두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중요한 예언을 했어요.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보다 강해질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신들은 겁이 났어요. 만약 제우스가 테티스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자신을 몰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신들은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Peleus)와 결혼시켰어요.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아킬레우스예요. 반신반인(半神半人)이지만, 여전히 아버지보다 강한 존재가 될 운명이었어요.
테티스는 아들을 신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갓난아기 아킬레우스를 스틱스 강(지하세계의 강)에 담갔어요. 스틱스 강물에 닿은 부분은 불사신이 되는 신비한 힘이 있었거든요.
아킬레우스 건(腱)의 비극적 운명
하지만 테티스가 아기를 강물에 담글 때 실수가 있었어요. 아기의 발뒤꿈치를 잡고 담갔는데, 그 부분만은 강물에 닿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아킬레우스의 몸은 발뒤꿈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사신이 됐어요.
이 발뒤꿈치가 바로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 건'이에요. 현재도 발뒤꿈치 뒤쪽의 힘줄을 아킬레우스 건이라고 부르죠. 이는 강력한 존재도 치명적인 약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라는 표현이 생겨났어요.
맨드라미도 비슷한 특성이 있어요. 강인해 보이는 꽃이지만 실제로는 추위에 매우 약해요. 첫서리만 내려도 바로 시들어버리거든요.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처럼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거죠.
케이론의 영웅 교육
아킬레우스는 어린 시절 케이론(Chiron)이라는 현명한 켄타우로스에게서 교육을 받았어요. 케이론은 다른 켄타우로스들과는 달리 지혜롭고 선량한 존재였어요. 아스클레피오스(의학의 신)을 비롯해 많은 영웅들을 가르친 스승이었죠.
케이론에게서 아킬레우스는 전투술, 음악, 의술, 사냥 등을 배웠어요. 특히 리라 연주를 잘했는데, 이는 나중에 그의 감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됐어요. 전사이면서도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복합적 인물이었던 거죠.
맨드라미도 비슷한 이중성을 가져요. 겉으로는 강렬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섬세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킬레우스처럼 거칠면서도 섬세한 매력이 있는 거예요.
트로이 전쟁 참전을 둘러싼 갈등
트로이 전쟁이 시작됐을 때, 테티스는 아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예언에 따르면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에 가면 젊은 나이에 죽을 운명이었거든요. 반면 트로이에 가지 않으면 길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스키로스 섬에 숨겼어요. 심지어 여자 옷을 입히고 공주들 사이에 섞어놨죠.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꾀에 넘어가서 정체가 들통났어요. 오디세우스가 무기와 장신구를 섞어놓고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아킬레우스만 무기를 집었던 거예요.
결국 아킬레우스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택했어요. 긴 삶보다는 짧지만 명예로운 삶을 택한 거죠. 이는 맨드라미의 생애와 비슷해요. 1년생이라 짧게 살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3. 파트로클로스와의 우정: 영원한 동반자와 복수의 불꽃
운명적 만남과 깊어지는 유대
아킬레우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파트로클로스(Patroclus)예요. 두 사람의 만남은 정말 운명적이었어요. 파트로클로스는 어렸을 때 실수로 친구를 죽이는 사고를 내서 고향을 떠나야 했거든요. 그때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가 그를 받아줬어요.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전투 실력은 떨어졌어요. 대신 지혜롭고 온화한 성격이었죠. 아킬레우스의 격렬한 성격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했어요.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완벽한 조합이었어요.
맨드라미 꽃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하나의 꽃이삭 안에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서로 의지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는 거죠. 개별적으로는 작지만, 함께할 때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트로이에서의 동반자적 삶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항상 함께했어요. 같은 텐트에서 생활하고, 함께 전투에 나가고, 여가 시간에는 아킬레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면 파트로클로스가 노래를 불렀어요.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달래는 유일한 존재였어요. 아킬레우스가 너무 흥분하면 파트로클로스가 조용히 말을 걸어서 진정시켰어요. 반대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했어요.
이런 관계는 맨드라미의 꽃 구조와 비슷해요. 꽃이삭의 바깥쪽 꽃들은 안쪽 꽃들을 보호하고, 안쪽 꽃들은 바깥쪽 꽃들에게 안정감을 줘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거죠.
아가멤논과의 갈등, 그리고 파업
트로이 전쟁 10년차에 큰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라는 여인을 빼앗은 거예요. 아킬레우스는 모욕감을 느꼈어요.
"내가 가장 많이 싸우는데 왜 내 몫을 빼앗느냐!"
아킬레우스는 분노해서 전쟁 참가를 거부했어요. 자신의 미르미돈족 전사들과 함께 텐트에 틀어박혔죠. 이는 역사상 최초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군은 트로이군에게 연패했어요.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이 그리스군 진영 깊숙이 들어와서 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어요. 상황이 절망적이 됐어요.
파트로클로스의 출정과 비극적 죽음
위기를 견디지 못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부탁했어요.
"네가 직접 나갈 수 없다면 나라도 보내줘. 그리고 네 갑옷을 빌려줘."
아킬레우스는 고민 끝에 승낙했어요. 하지만 조건을 달았어요.
"트로이군을 물리치는 것까지만 하고, 너무 깊이 추격하지는 마라."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어요. 트로이군은 아킬레우스가 돌아온 줄 알고 겁에 질려 후퇴했어요. 파트로클로스는 대승을 거뒀지만, 승리에 취해서 아킬레우스의 경고를 잊었어요.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성벽까지 추격했다가 헥토르(Hector)와 맞닥뜨렸어요.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자이자 최고의 전사였죠.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패배하고 죽었어요.
아킬레우스의 절규와 복수 결심
친구의 죽음을 들은 아킬레우스의 반응은 처참했어요. 땅에 엎드려 흙을 뒤집어쓰며 울부짖었어요.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어머니 테티스가 바다 밑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해요.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끌어안고 밤새 울었어요. 그리고 맹세했어요.
"헥토르를 죽이기 전에는 음식도, 물도 입에 대지 않겠다."
이때의 아킬레우스는 마치 불타는 맨드라미처럼 온몸이 분노로 타올랐어요. 복수심이 그를 완전히 지배했거든요.
테티스는 아들의 결심을 알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새로운 갑옷을 주문했어요. 신이 직접 만든 갑옷이니까 그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었죠. 하지만 동시에 테티스는 알고 있었어요. 아들이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도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헥토르와의 운명적 대결
새 갑옷을 입은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나타났을 때, 온 천지가 진동했어요. 그는 마치 불의 신 같았어요. 트로이군은 공포에 질려 성 안으로 도망쳤지만, 헥토르만은 성문 앞에 홀로 남았어요.
하지만 막상 아킬레우스와 마주하자 헥토르도 두려워졌어요. 그는 성벽 주위를 세 바퀴나 도망쳤어요. 아킬레우스가 끈질기게 추격했죠.
결국 아테나 여신의 속임수에 넘어간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정면 대결을 벌였어요. 승부는 금방 났어요. 아킬레우스의 창이 헥토르의 목을 관통했어요.
죽어가는 헥토르가 마지막 부탁을 했어요.
"내 시신을 부모에게 돌려달라."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냉정하게 대답했어요.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너에게 자비는 없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묶어서 질질 끌고 다녔어요. 파트로클로스의 분노가 채워질 때까지 매일 반복했어요.
마치며
9월 맨드라미를 보면 이제는 아킬레우스의 복잡한 면모들이 모두 보이실 거예요.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 친구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 모욕에 대한 폭발적인 분노,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비극적 용기까지... 모든 감정이 극도로 강렬한 인물이었어요.
맨드라미의 붉은 꽃이삭처럼 아킬레우스의 삶도 짧았지만 강렬했어요. 그는 길고 평범한 삶 대신 짧고 영광스러운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를 끝까지 책임졌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킬레우스의 지혜가 필요해요. 때로는 자신의 신념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동시에 분노에 휩쓸려 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맨드라미처럼 강렬하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네요.
다음에는 채송화와 헬리오스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하루만 피었다 지는 꽃과 태양신의 하루 여행,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