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신 시리즈 #1
법정에 서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쳐본 적이 있나요? 고대 그리스인들도 똑같았어요. 그들은 정의가 단순히 인간이 만든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신성한 힘이라고 믿었거든요. 그 힘을 의인화한 존재가 바로 디케(Dike), 정의와 법의 여신이었죠.
디케는 네메시스와 자주 비교되지만, 둘의 역할은 미묘하게 달랐어요. 네메시스가 '잘못에 대한 응징'을 담당했다면, 디케는 '올바름 그 자체'를 상징했어요. 네메시스가 사후약방문이라면, 디케는 예방주사인 셈이죠. 디케는 "이것이 옳다"고 선언하고,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르도록 안내했어요.
디케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정의', '올바름', '관습법'을 의미해요. 단순히 법조문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도덕적 규범과 공정함의 개념 전체를 포함하는 거예요. 디케가 있는 곳에는 질서가 있고, 디케가 없는 곳에는 혼란이 있었어요.
오늘은 인간 사회에 정의와 법을 가져다준 여신, 디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했으며, 현대 법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디케의 이야기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에 대한 고대의 답변이에요.

1. 정의의 탄생: 제우스와 테미스의 완벽한 딸
신들의 왕과 법의 여신 사이에서
디케는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에요. 이 출생 자체가 의미심장해요. 제우스는 권력의 정점이었고, 테미스는 신성한 법과 질서의 여신이었거든요. 권력과 법이 결합해서 낳은 것이 바로 정의였던 거예요.
테미스는 티탄족 출신으로, 제우스의 두 번째 아내였어요. 첫 번째 아내 메티스를 삼킨 후 제우스가 선택한 배우자가 테미스였죠. 테미스는 우주의 자연법칙, 신들 사이의 질서, 그리고 예언의 능력을 가진 위대한 여신이었어요.
제우스와 테미스의 결혼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완성을 의미했어요. 티타노마키아 이후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던 제우스에게 테미스는 완벽한 동반자였어요. 그녀는 올림포스의 법과 규칙을 정하고, 신들의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했거든요.
이런 부모 사이에서 디케가 태어났을 때, 모든 신들이 축하했어요. 디케는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지혜를 모두 물려받았거든요. 그녀는 제우스의 뜻을 인간 세상에 전하고, 테미스의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는 역할을 맡게 됐어요.
호라이 삼자매: 계절과 질서의 수호자들
디케는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두 명의 언니와 함께 태어났는데, 이들을 통틀어 '호라이(Horae)' 또는 '계절의 여신들'이라고 불렀어요. 세 자매는 각각 에우노미아(Eunomia, 좋은 질서), 디케(Dike, 정의), 에이레네(Eirene, 평화)였어요.
이 세 여신의 조합이 흥미로워요. 좋은 질서가 있으면 정의가 실현되고, 정의가 있으면 평화가 온다는 논리예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세 가지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했거든요.
호라이 자매들은 올림포스의 문지기 역할도 했어요. 신들이 하늘과 땅을 오갈 때 구름 문을 열어주는 일을 했죠. 이는 상징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담당한다는 의미였어요. 특히 디케는 인간 세상의 정의를 신들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했어요.
세 자매는 또한 계절의 변화도 관장했어요. 그리스에서는 계절이 세 개로 나뉘었는데 - 봄(씨 뿌리기), 여름(성장), 가을(수확) - 각각의 계절이 자매들과 연결됐어요. 계절의 규칙적인 순환이 바로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디케는 특히 수확기와 관련이 깊었어요. 정의로운 사회는 풍요로운 수확을 얻고, 부정한 사회는 흉년을 맞는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 디케에게 기도했어요.
아스트라이아와의 관계: 별이 된 정의
흥미롭게도 디케는 종종 아스트라이아(Astraea)와 동일시되거나 혼동돼요. 아스트라이아는 앞서 천칭자리 이야기에서 나왔던 정의의 여신이죠. 어떤 신화에서는 디케와 아스트라이아가 같은 여신이라고 하고, 어떤 신화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해요.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디케가 아스트라이아의 별명이거나, 아스트라이아가 디케의 다른 모습이라는 거예요. 헤시오도스는 디케를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로 명확히 했지만, 후대 시인들은 아스트라이아라는 이름을 더 자주 사용했어요.
아스트라이아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의 여신이 인간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점이에요. 황금시대에서 철시대로 갈수록 인간이 타락하자, 디케(또는 아스트라이아)는 실망해서 하늘로 올라가 처녀자리가 됐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완벽한 정의는 이 세상에 없다"는 비관적인 인식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정의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있어요. 디케가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의미니까요.
제우스의 특별한 총애
디케는 제우스의 많은 자녀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랑을 받았어요. 제우스는 디케를 자신의 옥좌 옆에 앉혔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항상 디케의 의견을 물었어요.
헤시오도스는 디케를 "제우스의 눈동자"라고 불렀어요. 제우스가 세상을 볼 때 디케의 시선으로 본다는 의미였죠. 인간 세상에서 부정의가 일어나면 디케가 즉시 아버지에게 보고했고, 제우스는 그에 따라 벌을 내렸어요.
『일과 날들』에서 헤시오도스는 이렇게 썼어요: "디케는 부정한 재판을 하는 자들, 법을 왜곡하는 자들의 이름을 적어 아버지 제우스에게 가져간다. 그러면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악행으로 고통받는다."
이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제 그리스 사회의 법 철학이었어요. 재판관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판결과 결정이 디케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더욱 공정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어요.
제우스는 디케를 통해 인간 세상에 질서를 부여했어요. 디케는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는 관찰자이자, 정의를 실현하는 집행자였어요. 이런 삼중 역할이 디케를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 중 하나로 만들었어요.
디케의 상징들: 저울과 검
디케는 여러 가지 상징물과 함께 묘사됐어요. 가장 유명한 것이 저울과 검이었죠. 이 두 가지는 후대에 '정의의 여신' 이미지의 핵심이 됐어요.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상징했어요. 디케는 양쪽의 주장을 정확히 재서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했어요. 이 저울은 속일 수 없었고, 감정이나 편견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오직 사실과 법만이 저울의 무게를 움직일 수 있었어요.
검은 정의의 집행을 의미했어요.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하지만 디케의 검은 복수의 검이 아니라 교정의 검이었어요. 벌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고, 사회를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놓는 것이 목적이었거든요.
후대에 디케는 눈가림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졌어요. 이는 '눈먼 정의(blind justice)'를 상징하는데, 부자든 가난한 자든, 권력자든 일반인이든 구별 없이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의미예요.
2. 법의 수호자: 법정에서 광장까지, 정의의 실천
법정의 수호신
디케는 고대 그리스의 모든 법정에서 숭배됐어요.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판사들은 디케에게 기도했고, 증인들은 디케의 이름으로 맹세했어요. 거짓 증언을 하면 디케의 분노를 산다고 믿었거든요.
아테네의 법정에는 디케의 제단이 있었어요.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 전에 이 제단에 제물을 바치며 "진실만을 말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승소한 쪽은 감사의 제물을 다시 바쳤고요.
특히 살인 재판을 담당했던 아레오파고스 법정은 디케를 가장 신성하게 여겼어요. 이 법정은 아테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법기관이었는데, 판사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디케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재판관들은 판결을 내릴 때 "디케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이는 자신의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보편적 정의의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는 의미였어요. 만약 부당한 판결을 내리면 디케가 그 재판관을 벌한다고 믿었죠.
흥미로운 것은 배심원 제도도 디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에요. 아테네에서는 시민들로 구성된 대규모 배심원단이 재판을 했는데, 이는 "정의는 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합의"라는 디케의 원칙을 반영한 거예요.
디카이오시네: 정의로운 삶의 방식
디케에서 파생된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디카이오시네(Dikaiosyne)'예요. 이는 '정의', '올바름', '공정함'을 포괄하는 포괄적인 덕목이에요. 플라톤은 이를 네 가지 주요 덕목(지혜, 용기, 절제, 정의) 중 하나로 꼽았어요.
플라톤의 『국가』에서 디카이오시네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요.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사회의 각 부분이 조화롭게 기능하는 상태를 의미했어요. 개인의 영혼에서도 이성, 의지, 욕망이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디카이오시네였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디카이오시네를 두 가지로 나눴어요. '분배적 정의'와 '교정적 정의'였죠. 분배적 정의는 각자의 공헌에 따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고, 교정적 정의는 거래나 범죄에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어요.
일상생활에서 디카이오시네를 실천하는 것은 간단했어요. 계약을 지키고, 빚을 갚고, 정직하게 거래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거였어요.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믿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디카이오시네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어요. 용감하지만 부정한 사람보다 정의롭지만 소심한 사람이 더 존경받았어요. "정의롭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도시국가의 수호자
디케는 개인의 정의뿐만 아니라 도시국가(폴리스) 전체의 정의도 관장했어요. 각 도시국가에는 디케를 모시는 신전이나 제단이 있었고,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어요.
특히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 디케에게 의견을 구했어요. 델포이 신탁소에서 신탁을 받기 전에도 디케에게 기도하며 "올바른 길을 보여달라"고 간청했어요.
아테네의 민회(에클레시아)가 시작될 때도 디케의 이름이 불렸어요. 시민들이 투표하기 전에 "디케의 정신에 따라 투표하겠다"고 맹세했거든요. 이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결정한다는 의미였어요.
디케는 또한 외교 관계에서도 중요했어요. 다른 도시국가와 조약을 맺을 때 디케의 이름으로 맹세했고, 조약을 어기면 디케의 저주를 받는다고 믿었어요. 국제법의 초기 형태가 디케의 개념에서 나온 거예요.
전쟁에서도 디케의 원칙이 적용됐어요. '정의로운 전쟁(bellum justum)' 개념이 바로 디케에서 나왔어요. 방어 전쟁이나 조약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정당하지만, 순전히 욕심으로 시작한 침략 전쟁은 디케에 어긋난다고 봤어요.
일상 속의 디케: 시장에서 가정까지
디케는 거창한 법정이나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일상적인 거래와 관계에서도 디케의 원칙이 작동했어요. 시장에서 정직하게 거래하는 것, 이웃과 공평하게 지내는 것, 가족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디케의 영역이었어요.
아테네의 시장(아고라)에는 디케의 작은 신전이 있었어요. 상인들은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에서 기도했고, 거래 분쟁이 생기면 이곳에서 조정을 받았어요. 속임수를 쓰거나 저울을 조작하는 것은 디케에 대한 모독이었거든요.
가정에서도 디케의 원칙이 중요했어요. 부모는 자녀를 공평하게 대해야 했고, 자녀는 부모를 존경해야 했어요. 재산 상속도 디케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했죠. 한 자녀에게만 편애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상속에서 제외하는 것은 디케에 어긋나는 행위였어요.
노예제도가 있던 고대 사회에서도 디케의 개념이 적용됐어요. 주인은 노예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일정한 권리를 보장해야 했어요.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완전한 정의였지만, 당시로서는 디케가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어요.
친구 관계에서도 디케가 중요했어요. 약속을 지키고, 비밀을 지키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디케였어요. 배신은 디케에 대한 가장 큰 위반으로 여겨졌고, 배신자는 사회적으로 배척당했어요.
디케와 민주주의
디케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였어요.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이 아니라 디케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다수의 의견이라도 디케에 어긋나면 옳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아테네에는 복잡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있었어요. 민회가 부당한 결정을 내리면 법정에서 뒤집을 수 있었고, 특정 개인이 너무 강력해지면 도편추방제(ostracism)로 10년간 추방할 수 있었어요.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디케 개념의 중요한 시험대였어요. 소크라테스는 부당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법을 존중하며 독배를 마셨어요.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실제로는 플라톤의 해석), 이는 디케가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극단적 해석이었어요.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견해를 보였어요. 그들은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어요. 진정한 법은 디케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법은 따를 의무가 없다는 거였죠. 이는 후대 자연법 사상의 기초가 됐어요.
3. 현대의 디케: 정의의 여신이 남긴 영원한 유산
법의 여신 유스티티아
로마 시대에 디케는 '유스티티아(Justitia)'라는 이름으로 계승됐어요. 영어의 'justice(정의)'가 바로 유스티티아에서 나온 단어죠.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디케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법 체계에 통합했어요.
유스티티아는 디케와 거의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울, 검, 눈가림... 이 모든 상징이 그대로 이어졌어요. 로마의 법정에도 유스티티아의 상이 세워졌고, 판사들은 그녀의 이름으로 판결했어요.
로마법은 유스티티아의 원칙을 체계화했어요. "각자에게 그의 몫을(suum cuique)"이라는 유명한 법언이 유스티티아의 핵심을 담고 있어요. 또한 "법 앞의 평등", "무죄 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같은 현대 법의 기본 원칙들도 유스티티아의 정신에서 나왔어요.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유스티티아는 기독교적 개념과 결합됐어요. 하지만 기본 속성은 변하지 않았어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시 고전적 형태의 유스티티아 상이 유행했고,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졌어요.
오늘날 전 세계 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모두 디케-유스티티아의 후손이에요. 미국 대법원, 영국 올드 베일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어디를 가도 눈가림을 하고 저울과 검을 든 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현대 법철학 속의 디케
현대 법철학도 여전히 디케의 질문과 씨름하고 있어요.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단순히 권력자의 의지인가, 아니면 보편적 원칙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2500년 전 그리스인들이 디케를 통해 고민했던 것과 같아요.
자연법 이론은 디케의 직계 후손이에요. 인간이 만든 법(실정법)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법이 존재한다는 생각이죠. 토마스 아퀴나스, 존 로크, 임마누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이 이 전통을 이어갔어요.
반대로 법실증주의는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디케 같은 추상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요. 하지만 이들도 "좋은 법"과 "나쁜 법"을 구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요. 그 기준이 바로 디케의 현대판이에요.
존 롤스의 『정의론』은 현대 정치철학에서 디케의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다뤘어요.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 개념은 디케의 저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거예요. 무지의 베일 뒤에서 공정하게 규칙을 정한다는 아이디어는 디케의 눈가림과 통하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결국 디케의 질문으로 돌아가요. 공리주의적 정의, 자유지상주의적 정의, 공동체주의적 정의... 어떤 이론을 택하든,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가"를 물으며 디케를 찾고 있어요.
국제법과 인권의 수호자
디케의 정신은 국제법으로도 확장됐어요. 국가 간의 관계에도 정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같은 기구들은 국제적 차원의 디케를 구현하려는 시도예요.
특히 인권 개념은 디케의 현대적 표현이에요.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은 디케가 강조했던 "각자에게 마땅한 몫"의 확장이에요.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규약 같은 문서들이 디케의 21세기 버전인 거죠.
난민 보호, 전쟁범죄 처벌, 인도에 대한 범죄 규정... 이런 국제법 원칙들도 디케의 정신을 담고 있어요.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의 남용을 막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니까요.
물론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어요. 강대국은 여전히 국제법을 무시하고,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돼요. 하지만 디케의 이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더 나은 세상을 요구할 수 있어요.
회복적 정의: 디케의 새로운 해석
최근 주목받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개념은 디케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시도예요. 전통적 형사사법이 처벌에 초점을 맞춘다면, 회복적 정의는 관계의 회복과 피해의 치유에 초점을 맞춰요.
디케의 목적은 단순히 범죄자를 벌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깨진 사회적 균형을 회복하고, 피해를 복구하고, 공동체를 치유하는 것이었어요. 회복적 정의는 바로 이 원래의 디케 정신을 되살리는 거예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서 대화하고,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지 함께 결정하고, 공동체가 이 과정을 지원하는... 이런 방식은 고대 그리스 마을에서 디케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조정과 비슷해요.
뉴질랜드, 캐나다,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이 회복적 정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특히 청소년 범죄나 경미한 범죄에서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어요. 재범률도 낮아지고, 피해자의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소셜 저스티스: 디케의 확장
'사회정의(social justice)' 운동도 디케의 현대적 표현이에요. 단순히 법적 평등을 넘어서 경제적, 사회적 정의까지 추구하는 거죠. 가난, 차별, 불평등... 이런 구조적 문제들도 디케가 다루어야 할 영역이라는 인식이에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불의한 법에 저항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라는 말은 디케의 정신을 정확히 담고 있어요. 부당한 인종차별법에 맞선 민권운동은 현대판 디케의 실천이었어요.
여성 인권,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 인권... 이런 운동들도 모두 디케의 원칙을 확장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이라는 구호는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이라는 디케의 원칙과 같아요.
환경 정의 운동도 주목할 만해요. 환경 파괴의 피해가 가난한 사람들과 미래 세대에게 불공평하게 전가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거든요. 이는 디케의 원칙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확장하는 시도예요.
디지털 시대의 정의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디케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알고리즘의 공정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디지털 격차, 인공지능의 윤리...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디케의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예요.
AI 판사나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이 도입되면서 "기계가 공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어요. 디케의 저울은 편견 없이 정확했지만, AI는 학습 데이터의 편향을 반영할 수 있거든요.
온라인 공간에서의 정의도 중요한 이슈예요. 사이버 불링, 가짜 뉴스, 혐오 발언...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표현의 자유와 피해 방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이것도 디케가 답해야 할 질문이에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분산 정의' 시스템도 실험되고 있어요. 중앙화된 법원 대신 커뮤니티가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죠. 이는 어떤 면에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적 사법 체계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요.
마치며
디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디케가 여전히 중요한 거예요.
디케는 완벽한 정의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대신 우리가 계속해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쳐요. 저울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순간은 드물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해요.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 - 불평등, 차별, 부패, 환경 파괴 - 은 결국 디케의 부재에서 나와요. 공정하지 못한 분배,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 권력의 남용... 이 모든 것이 디케를 저버린 결과예요.
하지만 희망도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들은 모두 디케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에요.
다음에 법원 앞을 지나가거든 정의의 여신상을 한번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내 삶에서 디케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나는 공정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약자를 배려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바로 디케가 우리에게 던지는 영원한 질문이에요.
디케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녀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어요. 우리가 정의를 외치고, 불의에 맞서고, 공정함을 추구할 때마다... 디케는 우리와 함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