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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복수에서 정의, 균형까지 - 교만한 자들을 응징하는 냉혹한 심판자

by 룬티나 2025. 10. 28.

고대신 시리즈 #19

누군가 불공정하게 성공하거나, 오만하게 굴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그럴 때 "저 사람 언젠가 벌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리스 신화에는 실제로 그런 일을 담당하는 여신이 있었어요. 바로 네메시스(Nemesis), 응보와 복수의 여신이었죠.

네메시스는 단순한 복수의 여신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우주의 균형을 지키는 수호자였거든요. 누군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너무 많이 가지거나, 너무 교만해지거나,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얻으면... 네메시스가 나타나서 균형을 되돌렸어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가혹하게 말이에요.

네메시스라는 이름 자체가 '분배하다', '할당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νέμειν(nemein)'에서 왔어요.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분배한다는 의미죠.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처벌을 공정하게 나누어주는 거예요.

오늘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던 여신, 네메시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했으며,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네메시스의 이야기는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는 우주의 법칙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교훈이에요.

 

 

 

네메시스: 복수에서 정의, 균형까지 - 교만한 자들을 응징하는 냉혹한 심판자
네메시스: 복수에서 정의, 균형까지 - 교만한 자들을 응징하는 냉혹한 심판자

 

 

 

1. 정의의 화신: 밤의 딸에서 균형의 수호자까지

 

닉스의 어둠에서 태어난 심판자

네메시스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버전이 있어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네메시스는 닉스(Nyx, 밤의 여신)의 딸이에요. 에리스처럼 아버지 없이 닉스 혼자서 낳았다고 하는 버전도 있고, 에레보스(어둠의 신)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버전도 있어요.

닉스의 자식들은 대부분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들이었어요. 죽음, 고통, 불화, 파멸... 하지만 네메시스는 좀 달랐어요. 그녀는 단순히 고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했거든요.

또 다른 버전에서는 네메시스가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이라고도 해요. 이 경우 네메시스는 정의와 균형을 상징하는 오케아니데스(바다 요정) 중 하나가 되는 거죠. 출생이 어떻든, 네메시스의 본질은 동일했어요. 우주의 균형을 지키는 응보의 여신이라는 점에서 말이에요.

헤시오도스는 네메시스를 '정의로운 분노'와 '당연한 분배'를 의미하는 존재로 묘사했어요. 그녀의 분노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질서가 깨졌을 때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우주의 메커니즘 같은 거였어요.

히브리스와 네메시스: 교만과 응징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해하려면 '히브리스(Hybris)'와 '네메시스'의 관계를 알아야 해요. 히브리스는 '교만', '오만', '분수를 모름'을 뜻하는 개념이에요.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망각하고 교만해지는 것을 의미했죠.

그리스인들은 히브리스를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겼어요.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어도, 교만해지면 반드시 몰락한다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그 몰락을 가져오는 존재가 바로 네메시스였어요.

히브리스와 네메시스의 관계는 자동적이었어요. 누군가 히브리스를 보이면, 네메시스가 반드시 나타났어요. 마치 중력처럼 피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이었죠. 높이 올라간 것은 반드시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네메시스의 법칙이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네메시스가 악인만 징벌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한 사람이라도 너무 많은 행운을 누리거나, 너무 완벽해서 신들의 영역에 가까워지면 네메시스가 개입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나친 행복도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다스테이아: 피할 수 없는 자

네메시스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다스테이아(Adrasteia)'였어요. '피할 수 없는 자'라는 뜻이죠.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네메시스는 반드시 찾아왔어요.

왕들도 네메시스를 두려워했어요. 크세르크세스, 크로이소스 같은 강력한 왕들이 몰락한 것도 네메시스의 작용이라고 여겨졌어요. 그들은 자신의 힘과 부를 과신하고 교만해졌고, 결국 네메시스가 그들을 무너뜨렸다는 거죠.

네메시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응보를 실행했어요. 당장은 교만한 자가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됐어요.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네메시스는 느리지만 확실하다"고 말했어요.

또한 네메시스는 세대를 넘어서도 작동했어요. 조상의 죄가 자손에게 전해지는 '가문의 저주' 개념도 네메시스와 연결되어 있어요. 아트레우스 가문의 비극이나 오이디푸스 가문의 불행도 조상의 히브리스에 대한 네메시스의 응징이라고 해석됐죠.

정의의 여신 디케와의 관계

네메시스는 종종 정의의 여신 디케(Dike)와 함께 언급돼요. 하지만 둘의 역할은 조금 달랐어요. 디케가 '올바른 것'을 상징한다면, 네메시스는 '올바르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을 담당했어요.

디케는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로, 법과 정의를 관장했어요. 그녀는 예방적이고 규범적인 역할을 했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반면 네메시스는 사후적이고 응징적이었어요. "잘못을 저지른 자는 벌을 받는다"를 실행하는 거죠.

둘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였어요. 디케가 정의를 선언하면, 네메시스가 그 정의를 실행했어요. 법정에 비유하자면, 디케는 법관이고 네메시스는 집행관인 셈이죠.

고대 그리스의 법정에는 디케와 네메시스의 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고(디케), 그 판결을 반드시 실행하라(네메시스)"는 의미였어요.

네메시스의 상징들: 저울, 검, 날개

네메시스는 여러 가지 상징물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울, 검, 날개였죠. 각각의 상징은 네메시스의 다른 면을 보여줘요.

저울은 공정한 분배와 균형을 상징했어요. 네메시스는 저울로 각자의 행동을 재고, 그에 합당한 보상이나 처벌을 주었어요. 이 저울은 절대 속일 수 없었고, 항상 정확했어요.

검은 응징의 도구였어요. 네메시스의 검은 가차 없었어요. 한번 내려치면 피할 방법이 없었죠. 하지만 이 검은 함부로 휘둘러지지 않았어요. 오직 정의로운 응징을 위해서만 사용됐어요.

날개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상징했어요.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아무리 높은 곳에 숨어도 네메시스는 날아가서 찾아낼 수 있었어요. 정의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였죠.

때로는 네메시스가 사슴이나 사자와 함께 묘사되기도 했어요. 사슴은 빠른 추적을, 사자는 강력한 힘을 상징했어요. 또한 재갈과 고삐를 들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데, 이는 교만을 억제한다는 의미였어요.

 

 

2. 복수의 실행: 나르키소스부터 크로이소스까지

 

나르키소스의 비극: 아름다움에 대한 교만

네메시스의 가장 유명한 응징 사례는 바로 나르키소스(Narcissus) 이야기예요. 나르키소스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어요. 그의 아름다움은 신들도 질투할 정도였죠. 하지만 문제는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너무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다는 거예요.

수많은 남녀가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그는 모두를 차갑게 거절했어요. 특히 님프 에코(Echo)의 사랑을 잔인하게 거부했어요. 에코는 헤라의 저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할 수만 있었는데, 나르키소스는 그런 에코를 조롱하며 내쫓았거든요.

에코는 상심한 나머지 몸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됐어요. 다른 거절당한 사랑들도 비슷하게 고통받았죠. 그러자 그들이 네메시스에게 기도했어요. "나르키소스가 자신이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맛보게 해주세요."

네메시스는 이 기도를 들었어요. 그리고 교묘한 벌을 계획했죠.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샘물가에 왔을 때, 네메시스는 물을 특별히 맑고 평온하게 만들었어요. 나르키소스가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자,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 순간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반영에 사랑에 빠졌어요. 물속의 아름다운 존재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는 매일 샘물가에 앉아서 물속의 모습을 바라봤어요. 먹지도, 자지도 않고 물만 응시했죠.

결국 나르키소스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그리고 그가 죽은 자리에 수선화(narcissus)가 피어났어요. 네메시스의 응징은 완벽했어요.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준 고통을 똑같이 경험한 거예요.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대상...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죠.

크로이소스의 몰락: 부와 권력에 대한 교만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유명했어요. "크로이소스처럼 부유하다"는 표현이 생길 정도였죠. 그는 막대한 금을 소유하고 있었고, 강력한 군대를 거느렸어요.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리스의 현자 솔론이 리디아를 방문했을 때,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주며 물었어요. "당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크로이소스는 당연히 솔론이 자신을 지목할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하지만 솔론은 이미 죽은 평범한 아테네 시민들의 이름을 댔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죽기 전까지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삶의 끝을 봐야만 진정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크로이소스는 솔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죠. 자신은 영원히 행복하고 부유할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네메시스는 이미 크로이소스를 주목하고 있었어요.

얼마 후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과 전쟁을 벌이게 됐어요. 델포이 신탁에 문의하자 "큰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어요. 크로이소스는 이것이 페르시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전쟁을 시작했죠.

하지만 무너진 것은 크로이소스의 제국이었어요. 리디아는 패배했고, 크로이소스는 포로가 되어 화형대에 올라갔어요.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크로이소스는 솔론의 말을 떠올리며 "솔론, 솔론, 솔론"이라고 외쳤어요.

키루스가 그 이유를 묻자, 크로이소스는 솔론과의 대화를 이야기했어요. 키루스는 감동해서 크로이소스를 사면했지만, 크로이소스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후였어요. 네메시스는 크로이소스에게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교훈을 주었던 거예요.

니오베의 비극: 자식에 대한 교만

니오베(Niobe)는 테베의 왕비로,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두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많은 자녀들을 자랑스러워했어요. 하지만 그 자랑이 도를 넘었죠.

어느 날 니오베는 레토 여신을 모시는 제전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레토는 겨우 두 자녀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열네 명이나 있다. 레토를 숭배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이것은 엄청난 히브리스였어요. 레토는 제우스의 연인이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였거든요. 니오베의 말을 들은 레토는 깊이 상처받았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수를 부탁했어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어머니를 모욕한 니오베를 응징하기로 했어요. 아폴론은 은빛 활로 니오베의 일곱 아들을 쏘아 죽였고, 아르테미스는 일곱 딸을 쏘아 죽였어요. 하루아침에 니오베는 모든 자녀를 잃게 된 거예요.

니오베는 슬픔에 빠져 울고 또 울었어요.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돌로 변했어요. 하지만 돌이 된 후에도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고 해요. 돌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이야기에서 네메시스는 직접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원리가 작동했어요. 니오베의 교만에 대한 응징이 신들을 통해 실행된 거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자녀 교육의 교훈으로 사용했어요. "자랑은 좋지만, 교만은 재앙을 부른다"고 말이에요.

아이아스의 자살: 명예에 대한 집착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Ajax)는 헥토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전사였어요.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무구를 누가 가질 것인가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어요.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후보였죠.

아이아스는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힘에서나 용맹에서나 자신이 오디세우스보다 훨씬 뛰어났으니까요. 하지만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를 선택했어요. 오디세우스의 지략이 아킬레우스의 정신을 더 잘 이어받았다고 판단한 거죠.

아이아스는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꼈고, 분노에 휩싸였어요. 밤에 그리스군 지휘관들을 죽이려고 했지만, 아테나 여신이 그를 미치게 만들어서 양 떼를 학살하게 만들었어요.

정신을 차린 아이아스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 수치심에 빠졌어요. 그는 자신의 명예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검으로 자살했어요.

아이아스의 비극도 네메시스의 작용으로 볼 수 있어요. 그의 과도한 자존심과 명예에 대한 집착이 히브리스였고, 그 결과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거예요. 만약 아이아스가 겸손하게 패배를 인정했다면, 여전히 존경받는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을 거예요.

현대의 네메시스: 권력자들의 몰락

네메시스의 원리는 현대에도 여전히 작동해요. 역사를 보면 교만했던 권력자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수없이 볼 수 있거든요.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의 교만으로 몰락했어요. 히틀러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죠. 그들은 자신이 무적이라고 착각했고, 그 교만이 파멸을 불렀어요.

기업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엔론, 리먼 브라더스 같은 거대 기업들이 교만과 탐욕으로 무너진 것도 현대판 네메시스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다"는 교만이 결국 그들을 무너뜨렸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네메시스는 작동해요. SNS에서 과시하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스캔들로 몰락하는 것,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이 결국 탄로나는 것... 이 모든 것이 네메시스의 현대적 표현이에요.

 

 

3. 균형의 수호자: 네메시스가 가르치는 겸손과 한계

 

메트론(Metron): 적당함의 철학

네메시스를 이해하려면 고대 그리스의 '메트론(Metron)' 개념을 알아야 해요. 메트론은 '적절한 척도', '적당함', '중용'을 의미해요. 모든 것에는 적절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으면 위험하다는 개념이죠.

델포이 신전에는 "메덴 아간(Meden Agan)"이라는 격언이 새겨져 있었어요. "지나침은 금물"이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바로 네메시스의 핵심 메시지였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극단을 피했어요. 너무 많이 먹지도, 너무 적게 먹지도 않고, 너무 열심히 일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고... 모든 것에서 균형을 추구했어요. 이것이 바로 네메시스를 피하는 방법이었거든요.

심지어 행복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행복하면 신들의 질투를 사거나, 네메시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일부러 겸손하게 행동하고, 신들에게 감사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어요.

소포로시네(Sophrosyne): 절제와 자기 인식

네메시스와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소포로시네(Sophrosyne)'예요. 이는 '절제', '자기 통제', '건전한 정신'을 의미해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을 뜻하죠.

소포로시네는 단순히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나는 영원하지 않고 죽을 존재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거예요.

델포이 신전의 또 다른 유명한 격언이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이에요.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죠. 이것도 소포로시네와 연결돼요.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히브리스에 빠지지 않고 네메시스를 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소크라테스의 철학도 이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그의 유명한 말은 소포로시네의 완벽한 표현이에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이라는 거죠.

네메시스와 운명: 통제할 수 없는 것의 수용

네메시스는 운명의 여신들(모이라이)과도 관련이 있어요. 모이라이가 각자의 운명을 정한다면, 네메시스는 그 운명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막았어요.

스토아 철학은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어요. "운명을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라"는 가르침이 바로 네메시스의 지혜에서 나온 거예요.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어요. 태어난 환경, 타고난 재능, 예상치 못한 사고... 이런 것들을 바꾸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네메시스를 부르는 행위예요. 대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죠.

물론 이것이 수동적으로 살라는 뜻은 아니에요. 노력하고 발전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내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네메시스가 주목하기 시작해요.

감사와 겸손: 네메시스를 피하는 방법

고대 그리스인들은 네메시스를 피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천했어요. 첫 번째는 항상 신들에게 감사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일이 생기면 "신들의 은총 덕분"이라고 말하고 제물을 바쳤어요.

두 번째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어도 자만하지 않고, 운이 좋았다고 말했어요. 성공한 장군들도 개선식에서 노예가 옆에서 "너는 인간일 뿐이다"라고 속삭이게 했다고 해요.

세 번째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었어요.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이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네메시스를 피하는 지혜였어요. 너무 많이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거죠.

네 번째는 운이 좋을 때 조심하는 것이었어요. 일이 너무 잘 풀리면 오히려 경계했어요. "지금이 네메시스가 올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더욱 신중하게 행동했죠.

현대 사회에서의 네메시스: 겸손의 가치

현대 사회는 성공과 과시를 강조해요. SNS는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 공간이 됐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어요. 이런 환경에서 네메시스의 지혜는 더욱 중요해요.

과도한 자신감은 위험할 수 있어요. "나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은 현대판 히브리스예요. 주식 시장의 폭락, 스타트업의 실패, 유명인의 몰락... 많은 경우가 과도한 자신감에서 시작돼요.

심리학에서도 이를 경고해요.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은 실제 능력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말해요. 이것이 잘못된 결정을 낳고, 결국 실패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반대로 겸손한 사람들은 더 지속 가능한 성공을 거둬요. 자신의 한계를 알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인정하고, 운의 역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요.

환경 위기와 네메시스: 자연에 대한 교만

현대의 가장 큰 히브리스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교만일 거예요. "우리는 자연을 정복했다", "과학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교만이에요.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자원 고갈... 이 모든 것이 현대 문명의 히브리스에 대한 네메시스의 응징으로 볼 수 있어요. 자연의 한계를 무시하고 끝없이 성장하려는 욕망이 결국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존중했어요. 숲에 들어가기 전에 님프들에게 허락을 구했고, 동물을 사냥하기 전에 아르테미스에게 기도했어요. 이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자연과의 균형을 지키려는 지혜였어요.

지속 가능성, 순환 경제, 재생 에너지... 이런 현대의 개념들은 사실 네메시스의 고대 지혜를 재발견한 것이에요. 자연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자연과 공존하려는 시도죠.

마치며

네메시스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마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거예요. 혹시 내가 너무 교만하지는 않았나,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았나...

네메시스는 무서운 여신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공정한 여신이기도 해요. 그녀는 악인만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균형을 지키는 거예요. 너무 많이 가진 자에게서 빼앗아 너무 적게 가진 자에게 주는... 그것이 네메시스의 역할이었어요.

현대 사회는 성공과 성취를 강조하지만, 네메시스는 우리에게 다른 가치를 상기시켜요. 겸손, 감사, 절제, 균형... 이런 덕목들이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다음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순전히 내 노력만의 결과일까? 운은 없었을까? 다른 사람의 도움은 없었을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그것이 바로 네메시스를 피하고, 행복을 오래 유지하는 고대의 지혜니까요.

네메시스는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라"고 말해요. 신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라고요. 그것이 진정한 지혜이고,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