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별자리 &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5
안드로메다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바다괴물 케토스, 기억하시나요? 안드로메다를 잡아먹으려다가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목에 석화되어 버린 그 무시무시한 괴물 말이에요. 하지만 케토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악당 괴물" 이상의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10월 밤하늘에서 안드로메다자리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면 거대한 고래자리(Cetus)가 펼쳐져 있어요. 황도 12궁에는 속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네 번째로 큰 별자리예요. 이 거대한 별자리 속에는 단순히 퇴치당한 괴물이 아니라,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존재의 비극이 담겨있거든요.
케토스는 정말 악한 괴물이었을까요? 아니면 포세이돈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였을까요? 해안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것은 케토스 자신의 선택이었을까요? 오늘은 이런 질문들을 통해 "괴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케토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에요. 권력자의 명령, 복종의 비극, 그리고 누가 진짜 괴물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거든요. 현대 사회에서 "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무심코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케토스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오늘은 10월 밤하늘의 슬픈 괴물 케토스와 함께, 바다 깊은 곳에서의 외로운 삶, 거부할 수 없었던 명령, 그리고 억울한 최후까지... 괴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안드로메다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1. 포세이돈의 분노가 낳은 파괴자: 케토스의 탄생과 거부할 수 없는 임무
바다 깊은 곳의 고대 존재
케토스는 원래부터 괴물로 태어난 게 아니었어요. 사실 케토스는 고대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케토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였거든요. 재미있는 건 케토스의 어머니 이름이 "케토(Ceto)"이고, 바다괴물을 뜻하는 이름도 "케토스(Cetos)"라는 점이에요.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죠.
케토스는 바다 가장 깊은 곳에서 살았어요.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 인간들이 절대 내려올 수 없는 그 깊은 곳에서 평화롭게 지냈거든요. 케토스는 본래 공격적인 성격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조용히 자신만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였어요.
케토스의 형제자매들도 많았어요. 고르곤 세 자매(메두사, 스테노, 에우리알레), 그라이아이 세 할머니, 그리고 여러 바다 괴물들...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가족이었어요. 케토스는 이들과 함께 바다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케토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어요. 거대한 몸집과 엄청난 힘,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었어요. 파도를 일으키고, 폭풍을 만들고, 해일을 일으킬 수 있었거든요. 이 능력 때문에 케토스는 결국 포세이돈의 눈에 띄게 됐어요.
포세이돈의 소환과 거부할 수 없는 명령
카시오페이아가 네레이드들을 모욕했을 때 포세이돈은 정말 화가 났어요. 하지만 직접 나서서 인간들을 벌할 수는 없었어요. 신들에게도 일정한 규칙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포세이돈은 대리인이 필요했어요. 자신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줄 존재...
포세이돈은 심해 깊은 곳의 케토스를 불렀어요. "케토스, 나에게 올라오너라." 케토스는 오랜만에 듣는 포세이돈의 목소리에 놀랐어요. 바다의 신은 절대적인 권력자였거든요. 케토스는 포세이돈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포세이돈의 궁전에 도착한 케토스는 명령을 들었어요. "에티오피아의 해안을 파괴하라. 배를 침몰시키고, 어부들을 죽이고,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라.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라." 케토스는 당황했어요. "왜요? 저 인간들이 저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
포세이돈은 설명하지 않았어요. "네가 이유를 알 필요는 없다. 그냥 명령을 따르면 된다." 케토스는 거부하고 싶었어요. 자신은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였거든요. 하지만 포세이돈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알았어요. 이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케토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포세이돈이 대답했어요. "인간들이 항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줄 때까지." "그게 뭔데요?" "그것도 네가 알 필요 없다. 그냥 파괴하라." 케토스는 무거운 마음으로 에티오피아로 향했어요.
파괴의 시작과 내면의 갈등
케토스가 에티오피아 해안에 처음 나타났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거대한 몸집이 바다에서 솟아오르자 파도가 일었고, 케토스가 꼬리를 한 번 치자 배들이 뒤집혔어요. 어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요.
케토스는 명령을 따라야 했어요. 항구를 파괴하고, 배를 부수고, 해안 마을에 파도를 일으켰어요. 하지만 매번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저 사람들이 나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특히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케토스는 생각했어요. "저 아이들은 뭐가 잘못인지도 모를 텐데... 왜 내가 저런 아이들까지 괴롭혀야 하지?" 하지만 포세이돈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어요. 거부하면 자신이 벌을 받을 거였어요.
케토스는 밤이 되면 깊은 바다로 돌아가서 혼자 울었어요. "나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하지만 낮이 되면 다시 명령을 수행해야 했어요. 파괴하고, 공포를 주고, 사람들을 죽여야 했어요.
어느 날 케토스는 포세이돈에게 다시 찾아가서 애원했어요.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 저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하지만 포세이돈은 차갑게 대답했어요. "네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명령을 계속 수행하라." 케토스는 자신이 포세이돈에게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안드로메다라는 최후의 임무
케토스가 에티오피아를 계속 공격하던 어느 날, 포세이돈으로부터 새로운 명령이 왔어요. "바위에 묶인 젊은 여성이 있을 것이다. 그녀를 잡아먹어라. 그러면 네 임무는 끝난다." 케토스는 잠시 희망을 느꼈어요. "드디어 끝나는구나..."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감정도 들었어요. "또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구나..." 케토스는 안드로메다를 찾아갔어요. 바위에 묶인 젊은 여성을 보는 순간, 케토스는 주저했어요. 너무 어리고 무서워하고 있었거든요.
케토스는 천천히 다가갔어요. 안드로메다의 눈을 보니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어요. 케토스는 생각했어요. "저 여자도 나처럼 누군가의 명령 때문에 여기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둘 다 피해자인 건 아닐까?"
잠시 망설이던 케토스는 결심했어요. "빨리 끝내자. 고통 없이 해주자." 입을 크게 벌리고 안드로메다를 향해 돌진했어요. 하지만 바로 그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타났어요.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검을 든 젊은 남자...
페르세우스가 케토스를 공격했을 때 케토스는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포세이돈의 명령을 완수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페르세우스와 싸웠어요.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가 날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메두사의 목과 해방의 순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꺼냈을 때 케토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냥 이상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물건"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췄어요.
몸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어요. 발부터, 꼬리부터... 서서히 돌로 변해갔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케토스는 두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드디어... 끝나는구나. 더 이상 누구도 해치지 않아도 되는구나."
석화되어 가면서 케토스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어요. 평화롭게 살고 싶었는데 괴물이 되어야 했던 삶...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서 무고한 사람들을 해쳤던 것... 모든 게 슬펐지만, 이제 끝이라는 게 위로가 됐어요.
완전히 돌로 변하기 직전, 케토스는 마지막 생각을 했어요. "페르세우스, 고마워. 넌 날 괴물에서 해방시켜줬어. 안드로메다, 미안해. 난 정말 너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케토스는 완전히 석화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어요.
2. 괴물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 명령과 복종, 그리고 자유의지의 부재
"나는 왜 괴물이 되었나"
케토스의 이야기를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케토스는 원래 나쁜 존재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조용히 바다 깊은 곳에서 살고 싶었던 평화로운 생명체였어요. 하지만 포세이돈의 명령 하나로 "괴물"이 되어야 했어요.
케토스가 가장 힘들어했던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나는 이런 존재가 아닌데... 왜 이런 짓을 해야 하지?" 매일 밤 자신에게 질문했어요. 하지만 대답은 항상 같았어요. "포세이돈의 명령이니까..."
케토스는 여러 번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포세이돈에게 다시 가서 애원하면 어떨까?", "아니면 그냥 도망가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선택지에는 끔찍한 결과가 따랐어요. 포세이돈을 거역하면 더 심한 벌을 받을 게 뻔했거든요.
특히 케토스를 괴롭힌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케토스를 "악한 괴물"로 봤어요. 케토스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저 괴물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어!", "저 무시무시한 짐승을 죽여야 해!" 케토스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했어요. "난 그냥...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
권력자의 도구로 살아가는 비극
케토스의 이야기는 권력 구조의 비극을 보여줘요. 포세이돈은 강력한 신이었고, 케토스는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약한 존재였어요. 이 불평등한 관계가 모든 비극의 원인이었죠.
포세이돈에게 케토스는 그저 도구였어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무기였어요. 케토스의 감정이나 의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마치 검이나 창처럼 그냥 사용되는 존재였던 거예요.
케토스는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없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바다의 신에게 복종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였거든요. 자유의지? 그런 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어요. 선택권? 그것도 없었어요. 그냥 명령을 따르거나, 아니면 벌을 받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현대 사회에도 케토스 같은 존재들이 많아요. 상사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 직장인, 부모의 강요된 선택을 따라야 하는 자녀,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알지만 바꿀 수 없는 공무원...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판 케토스예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케토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질문이 생겨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케토스일까요? 아니면 케토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포세이돈일까요?
포세이돈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정당한 분노를 표현한 것뿐이에요. 카시오페이아가 네레이드들을 모욕했으니 벌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 "벌"이 무고한 백성들의 죽음이어야 했을까요? 카시오페이아의 잘못인데 왜 관계없는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했을까요?
케토스는 실제로 사람들을 죽였어요. 배를 침몰시키고, 마을을 파괴하고, 공포를 퍼뜨렸어요. 하지만 그것은 케토스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만약 케토스에게 진짜 선택권이 있었다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카시오페이아는 어떨까요? 그녀도 악한 괴물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실수한 평범한 사람이었을까요? 결국 이 모든 비극의 사슬을 보면, "괴물"이라는 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상황과 관점에 따라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복종의 미덕과 저항의 용기
케토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질문도 던져요. "케토스가 포세이돈의 명령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끔찍한 벌을 받았겠지만, 적어도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죄를 짓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항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상대가 절대 권력자일 때는 더욱 그래요. 케토스에게 포세이돈을 거역하라고 요구하는 건, 현대의 직장인에게 부당한 상사와 싸우라고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에요.
역사를 보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전범들도 같은 변명을 했어요.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이 변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해야 한다는 게 현대 사회의 윤리예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해해야 해요. 저항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특히 생존이 걸린 문제일 때는 더욱 그래요. 케토스를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왜 케토스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동정과 책임 사이
케토스의 이야기는 "동정"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게 해요. 케토스의 상황은 정말 동정할 만해요. 선택권이 없었고, 강요당했고, 고통스러워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케토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케토스가 죽인 사람들에게는 케토스의 사정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냥 죽었고, 그들의 가족은 슬픔에 빠졌어요. 케토스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해도, 피해는 현실이에요.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예요.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부당한 일을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동정해야 할까요, 처벌해야 할까요? 아니면 둘 다? 정답은 없어요. 하지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케토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해요. "괴물을 만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개인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거예요. 포세이돈 같은 권력자가 함부로 다른 존재를 도구로 쓸 수 없는 시스템, 케토스 같은 존재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
3. 현대적 의미와 상징: 괴물 만들기와 우리 시대의 케토스들
언론이 만드는 괴물들
현대 사회에서 "괴물 만들기"는 정말 흔한 일이에요. 특히 언론과 SNS가 이런 일을 자주 해요. 한 사람의 실수나 문제를 과장해서 그 사람을 완전한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누군가 실수를 하면 미디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헤쳐요. 과거의 작은 잘못들까지 끄집어내서 "이 사람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었다"는 서사를 만들어요. 마치 케토스가 "원래부터 사악한 괴물"로 묘사된 것처럼요.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케토스처럼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시스템의 압박, 어쩔 수 없는 선택, 의도하지 않은 결과... 하지만 이런 맥락은 무시되고, 그 사람은 그냥 "괴물"이 돼버려요.
특히 "마녀사냥" 문화를 보면 케토스의 이야기가 생각나요.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우리가 잘못 알았네"로 끝나는... 케토스도 똑같았어요. 사람들은 케토스를 "사악한 괴물"로만 봤지, 케토스의 사정은 아무도 몰랐어요.
조직 문화 속의 케토스들
회사나 조직에도 케토스 같은 존재들이 많아요.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실행해야 하는 중간 관리자, 회사의 비윤리적 정책을 고객에게 설명해야 하는 직원, 시스템의 문제를 알지만 바꿀 수 없는 공무원...
이들은 종종 "악의 대리인"으로 비춰져요. 고객들은 직원을 욕하고, 시민들은 공무원을 비난해요. 하지만 그들도 케토스처럼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위치일 뿐이에요. 진짜 문제는 그런 명령을 내리는 상위 권력자나 시스템인데 말이죠.
"갑질" 논란을 보면 이런 구조가 정말 명확해요.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부당한 요구를 하면, 하청업체 사장이 직원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인 일을 해요. 그러면 소비자들은 그 직원을 욕해요. 케토스가 사람들에게 욕먹은 것처럼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맨 위의 대기업 아닐까요? 포세이돈처럼 명령을 내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존재들... 이들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케토스 같은 존재들을 방패막이로 쓰는 거예요.
시스템이 만드는 괴물성
케토스의 이야기는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줘요.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사람들을 괴물로 만드는 거예요. 좋은 사람도 나쁜 시스템 안에 있으면 나쁜 일을 하게 되고, 나쁜 사람도 좋은 시스템 안에 있으면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보면 이게 정말 명확해요. 평범한 대학생들을 간수와 죄수로 나누었더니, 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그들이 원래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에요. 시스템과 역할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케토스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평화로운 존재였지만, 포세이돈의 명령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괴물이 됐어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해요. 케토스 같은 존재가 생기지 않도록, 포세이돈 같은 권력자가 함부로 명령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거죠.
별자리가 된 의미: 기억과 경고
케토스가 별자리가 된 것은 정말 의미심장해요. 신들은 왜 케토스를 하늘에 올렸을까요? 벌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어쩌면 신들도 케토스의 비극을 인정한 건 아닐까요? "케토스는 나쁜 괴물이 아니었다.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였다." 그래서 케토스를 하늘에 올려서 영원히 기억하도록 한 거예요.
고래자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누군가를 괴물로 만드는 시스템과 권력 구조가 진짜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자칫하면 케토스를 만드는 포세이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래자리는 경고이기도 해요. "함부로 타인에게 명령하지 마라", "권력을 남용하지 마라", "누군가를 도구로 취급하지 마라"...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예요.
10월 밤하늘에서 만나는 케토스의 슬픔
실제로 10월 밤하늘에서 고래자리를 찾아보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에요. 고래자리는 하늘에서 네 번째로 큰 별자리인데, 안드로메다자리 아래쪽에 길게 펼쳐져 있어요.
고래자리의 가장 유명한 별은 미라(Mira)예요. 이 별은 변광성으로, 주기적으로 밝기가 변해요. 밝을 때는 맨눈으로도 잘 보이지만, 어두울 때는 망원경으로도 찾기 어려워요. 이것도 상징적이에요. 케토스의 존재가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안 보이는 것처럼, 괴물의 진실도 때로는 드러나고 때로는 숨겨지는 거예요.
고래자리를 보면서 케토스를 떠올려보세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았던 한 존재로... 그리고 우리 주변의 "괴물"로 불리는 사람들도 케토스처럼 자신만의 사연이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해보세요.
특히 안드로메다자리와 함께 보면 더 의미가 있어요. 희생자와 괴물이 함께 하늘에 있는 거예요. 서로 대립했지만, 결국 둘 다 더 큰 권력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마치며
10월 밤하늘의 고래자리를 바라보면 이제 완전히 다른 감정이 들 거예요. 단순히 퇴치당한 괴물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빼앗긴 채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슬픈 존재의 이야기가 보이실 거예요.
케토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요. 누가 진짜 괴물인가, 명령과 책임의 경계는 어디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쉬운 질문들은 아니지만, 계속 던져야 하는 질문들이에요.
케토스는 악당이 아니었어요. 피해자였어요.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어요. 이 복잡한 이중성이 바로 현실이에요. 세상은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아요. 모두가 동시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어요.